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스 침공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1939년 초, [[이탈리아 왕국]]의 [[베니토 무솔리니]]는 [[발칸반도]] 남부의 약소국 [[알바니아 왕국]]을 강제로 병합하여 발칸반도 침공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. 그리고 과거 [[오스만 제국]]과의 전쟁으로 [[에게해]]의 [[도데카니사 제도]]를 지배하던 이탈리아는 발칸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골몰하던 차였다. 이런 상황에서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하여 [[프랑스 침공|프랑스가 항복]]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, 본격적으로 [[나치 독일]]편에서 참전한 무솔리니는 프랑스 전역의 군사적 실패를 만회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발칸반도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계획한다. 그러나 무솔리니의 야망은 시작부터 [[아돌프 히틀러]]의 반대에 직면했다. 무솔리니는 아드리아 해, 발칸반도에서의 패권과 '미수복 이탈리아' 중 하나인 달마티아를 획득하기 위해 [[유고슬라비아 왕국]]을 공격하고자 했지만, 히틀러는 이에 반대하고 오히려 유고슬라비아를 [[추축국]]에 가담시키고자 했다. 이에 무솔리니는 유고슬라비아 대신 독일이 손을 쓸 수 없는 [[그리스 왕국]]을 자국 세력권으로 편입하고자 했다.[* 유고슬라비아는 당시 독일 오스트마르크 주(=오스트리아), 또 다른 추축국 [[헝가리 왕국(1920년~1946년)|헝가리 왕국]]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이탈리아가 독단적으로 유고를 침공할 경우 독일이 개입할 여지가 높았다. 반면 그리스는 독일과의 거리가 멀었다.][* 그리고 그리스 내에서도 [[요안니스 메탁사스|메탁사스 총리]]를 비롯한 군부는 독일 유학파여서 친독 성향이 강했지만, 귀족들과 [[요르요스 2세]] 등 왕실은 친영파였다.] 이탈리아는 [[이집트]] 전역이 마무리되기도 전인 10월 28일, 그리스 왕국에 주요 거점의 할양, [[이탈리아 왕국군]]의 주둔 허용 등을 포함한 최후통첩을 날렸으나, [[그리스 왕국]]의 실질적 지배자인 [[요안니스 메탁사스]](Ιωάννης Μεταξάς/Ioannis Metaxas) 총리는 [[프랑스어]]로[* [[제2차 세계 대전]] 당시에도 유럽 세계의 외교 언어는 기본적으로 프랑스어였다. 현재의 영어 중심으로 재편된 건 1950년대 이후.] '''"그래, 전쟁이다(Alors, c'est la guerre)!"''' 라고 답신하였고[* 최후통첩에 대한 대답을 '유감스럽지만 귀국의 이런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'라는 [[외교적 수사]]도 아니고 그냥 '전쟁이다.'라는 충격적인 답신을 해버린 것.][* 그런데 이 이야기는 와전되어서 메탁사스 총리가 이탈리아의 최후통첩에 그리스어로 '''"안 되오(Οχι, ohi)!"'''를 써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. 아마도 [[겨울전쟁]] 당시 [[퀴외스티 칼리오]] [[핀란드]] 대통령이 [[소련]]의 최후통첩에 "안 되오!"라고 대답한 일화와 뒤섞인 듯 하다. 하여튼 지금도 [[그리스]]와 [[키프로스]]에서 10월 28일은 "Ochi day" ~~안되는 날~~로, 공휴일이다.],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전쟁상태에 돌입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